커피를 오래 마셔온 사람으로서 향에 조금 민감한 편이다.
단맛이 튀는 것도, 향신료가 과한 것도 쉽게 피곤해진다.
그래서 뱅쇼를 만들 때도 커피를 대하듯 접근해 봤다.
처음 뱅쇼를 떠올리면 달콤한 와인 향과 강한 시나몬이 먼저 생각난다.
하지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뱅쇼를 조금 다르게 만들어봤다.
향은 분명하지만 과하지 않고, 따뜻하지만 무겁지 않은 것.
마치 깊은 로스팅 향 뒤에 남는 은은한 여운처럼.
그래서 스파이스는 항상 조심스럽다.
시나몬은 한 스틱이면 충분하고, 팔각은 향을 내기만 하고 빠져야 한다.
정향은 한두 알이면 충분하다.
많아질수록 뱅쇼는 ‘음료’가 아니라 ‘향신료 차’가 되어버린다.
과일도 마찬가지다.
오렌지와 사과는 향을 남기되, 즙이 탁해지지 않게 천천히 끓인다.
너무 오래 끓이면 단맛이나 텁텁함이 앞서고, 너무 짧으면 향이 얕다.
이 타이밍을 맞추는 과정이, 커피를 내릴 때의 추출 시간과 닮아 있다.
설탕 대신 꿀을 쓰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단맛을 더하기보다는 향을 둥글게 감싸주기 위해서.
꿀은 뱅쇼를 달게 만들기보다는, 거칠지 않게 만든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에게 좋은 뱅쇼는 ‘달아서 좋은 음료’가 아니라 ‘천천히 마셔도 지치지 않는 음료’다.
머그잔에 담아 김이 오르는 뱅쇼를 한 모금 마시면 와인보다 먼저 향이 오고, 향신료보다 과일이 느껴지고, 마지막에야 은근한 단맛이 남는다.
그 순서가 마음에 들면 '아, 이건 커피 좋아하는 나의 뱅쇼구나', 하고 혼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크리스마스라서, 연말이라서 특별한 게 아니라 그저 오늘 하루를 따뜻하게 마무리하고 싶을 때.
커피 대신 이런 뱅쇼 한 잔도 꽤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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