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일상

이해해준다는 말 뒤에 숨은 방임

planb50s 2026. 1. 13. 06:30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그 사람도 사정이 있었겠지.”
“조금만 더 이해해주면 되잖아.”

나 역시 그 말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이해하는 쪽이 늘 나였고, 기다리는 역할도 언제나 내 몫이었다.

나는 상대를 방치한 적이 없었다.
대신 나 자신을 방치하고 있었다.

 

관계를 돌아보면, 나는 늘 설명하는 사람이었다.
왜 말을 꺼내지 않았는지, 왜 지금까지 기다렸는지, 왜 이 정도는 넘어갈 수 있었는지.

그 설명은 상대를 위해서라기보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설명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라는 걸.

 

이해와 배려는 관계를 부드럽게 만든다.
하지만 그게 반복되면 어느 순간부터는 기준이 사라진다.

기준이 사라진 관계에서는 약속이 미뤄져도 큰 문제가 되지 않고, 침묵이 길어져도 누구도 불편해하지 않는다.
불편한 쪽은 늘 한 사람뿐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해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니 그건 이해라기보다 기대 없이 참아내는 습관에 가까웠다.

상대가 먼저 말해주길 바랐지만 그 바람은 점점 나만의 기대가 되었고, 기대는 말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해는 관계를 살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문제를 늦출 뿐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리고 그 늦춰진 시간만큼 나 자신은 더 지쳐 있었다.